야누스 -이상한 일①-
- 진청룡전설
- 790
- 1
“축제 때문에 어제까지 들떠있어서 경비가 허술했던 거겠지?”
[그렇겠지. 당분간은 편하게 말할 수 있겠어.]
“북문의 길을 따라가면 에토 영지가 나온다했고 도중에 비하인 영지를 통과해야한다고 했는데 비하인 영지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르겠네.”
[대충 10일 전후로 도착하겠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문제야.]
“물은 물병에 충분히 채웠고 식량도 충분히 챙겼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야. 암살자들만 빼면.”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더 이상 암살을 시도하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추적은 하겠지.]
“어째서?”
[마지막으로 왔던 놈들이 가장 실력이 좋은 암살자에 속하는 놈들이었을 거다. 그런 실력자들도 실패했으니 더 이상의 암살시도는 희생만 늘릴 뿐이라는 걸 알았겠지. 거기다 경고문구도 꺼림칙할 테니까. 하지만 네트페르스를 포기할 수는 없을 테니 어느 신전에 전달하는지 알기위해서 추적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경고문구가 왜? 그건 그냥 쫒아오지 말라는 뜻인데.”
[넌 그렇게 썼지만 상황과 상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지. 이런 경우에는 아마도 계속 귀찮게 하면 모조리 없애버린다는 뜻이 될 걸.]
“내가 암살자들을 모조리? 어디에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몰라도 돼. 해석하는 건 그놈들이니까.]
“그래? 그럼 또 덤비면 아주 확실하게 죽여야겠네.”
[생각은 완전히 마족이 다됐군.]
“칭찬이지?”
[야누스.]
“응?”
[잊지 마라. 강한 힘에는 항상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혹은 소중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간에. 신이 아닌 한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 얘기는 전에도 했잖아.”
[잊지 마라.]
“쳇, 알았어.”
지루한 걸음이 반복되었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벌레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가끔씩 후드를 벗기는 바람과 대지를 뒤덮은 초록색 풀, 그리고 여기저기 서서 옆의 시야를 가로막는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다. 물을 마시고 식량을 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자는, 그런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짧았다. 3일 째 되는 날, 처음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인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인간이 인생은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하는 건 운명이 인간에게 쉴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야. 만약 인간에게 쉴 틈이 있다면 그건 다친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주어진 아주 짧은 회복기일 뿐이지.”
[헛소리군.]
“어차피 다른 종족은 이해 못해.”
[그래서?]
“회복기 끝났다고.”
말을 끝맺은 순간, 야누스는 검을 뽑고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것들에게 달려갔다. 숫자가 많았다. 야누스는 그것들을 본 적이 있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본 마물, 레블과의 첫 만남, 계약, 처음으로 무언가를 죽였던 기억.
“자이언트 맨티스.”
야누스가 검을 앞으로 겨누고 뛰어올랐다. 파란색 검기가 맺힌 검이 순식간에 자이언트 맨티스의 머리를 꿰뚫었다. 자이언트 맨티스의 등에 착지한 야누스는 검을 빼면서 뒤로 뛰어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자이언트 맨티스들의 사이를 뛰어다니며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여기저기서 녹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뭐야! 누구냐!”
‘누가 있나?’
"젠장!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이놈들 좀 처리해줘!”
“방해나 하지 마.”
야누스의 음성이 소리를 지른 사람들의 귓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모두 그 목소리에 살기가 담겨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녹색 피는 계속 공중에 흘러나왔다. 자이언트 맨티스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 줄어들자 야누스의 눈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야누스를 보고 있었다. 자이언트 맨티스들도 상황을 알고 야누스만을 노리고 있었기에 그 사람들은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덩치가 크고 검을 든 사람이 7명. 그리고 짐마차 3대.’
야누스는 그들에게서 신경을 끄고 검을 휘두르는데 집중했다. 원래 이렇게 마물을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지난 3일의 지루함은 이상하게 화가 났다. 이보다 더 길게 지루했던 적도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뭔가에 화를 쏟아내고 싶었다.
‘상단과 호위용병인가.’
자이언트 맨티스들이 모두 전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빠르게 뛰어다녔기 때문인지 검은 로브에는 끈적거리는 녹색 피가 그다지 많이 묻지 않았다. 야누스는 검을 흔들어 피를 털어내고 검을 다시 허리에 매었다. 칼집이 없으니 허리끈과 옷 사이에 넣어 고정시켰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왜요?”
“아니, 아무것도.”
기분이 풀려서 야누스는 평소의 상태로 되돌아왔고 목소리는 살기가 없어 듣기 좋은 미성이 되었지만 아까의 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이언트 맨티스들을 전멸시킨 실력 때문인지 모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우리는 레드 용병대다. 호위에 고용된 용병대지. 갑자기 자이언트 맨티스들이 나타나서 위험했는데 도와줘서 고맙다.”
“어디로 가는 중인데요?”
“비하인 영지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나오지.”
“마차를 타고 가면 걸어가는 것보다 빠르겠죠?”
“물론! 우리를 구해줬으니 얼마든지 태워줄 수 있어.”
“고마워요. 그럼 가요.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마물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래야지. 다들 마차에 올라타! 이보쇼! 어서 출발합시다!”
야누스는 용병들을 따라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 안에 숨어있던 상인인 것 같은 사람이 밖으로 나와 고삐를 잡고 말을 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위험한 상황인데도 의외로 모두 침착하게 행동했다.
“다들 침착하네요.”
“용병 짓을 하다보면 위험한 일이 많거든. 그때마다 놀라면 때려치워야지. 물론 이번에는 좀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아뇨, 상인들 말이에요.”
“뭐, 우리랑 같은 이유 아니겠냐? 그런데 아직 서로 소개를 안 했네?”
“오래 같이 지낼 것도 아닌데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나요?”
야누스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위협할 생각은 없었지만 용병들에게는 섬뜩하게 들렸는지 재차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야누스는 뭔가가 풀려서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곤히 잠들었다. 그동안 어두워지면 길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걷기만 했으면서 암살자들 걱정에 편히 잘 수 없었던 탓인지 아주 편안하게 잠들었다. 야누스가 잠든 것을 확인한 용병들은 목소리를 낮춰 떠들기 시작했다.
“살벌하구만.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래?”
“정체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실력자다. 너희도 봤겠지? 푸른색의 검기 말이야.”
“봤지. 그렇지만 그걸로 대단한 실력자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검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기사나 용병 중에도 제법 많잖아. 우리들 중에도 두 명이나 있으니까.”
“멍청아, 우리랑 같은 급인 줄 아냐? 우린 검기에 색이 없는 익스퍼트 초급이다. 검기에 색이 있으면 익스퍼트 중급으로 분류하는 거야. 검기가 색도 있고 짙으면 상급이고. 아까 봤는데 좀 옅지만 선명한 걸보니 중급과 상급의 중간쯤이야. 너희도 순식간에 자이언트 맨티스를 전멸시키는 걸 봤잖아.”
“확실히 실력이 엄청났지.”
“그래, 실전경험이 많다는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너희들은 저 녀석이 몇 살로 보이냐?”
“얼굴을 가려서 잘 모르겠지만 목소리랑 키로 봐서는 잘 봐도 아직 젊은 여자 같은데?”
“그거다. 그 나이에 여자가 저 정도 실력이라는 건 천재라는 거야. 거기다 들고 있는 지팡이가 특이하게 생겼어. 신의 문장일지도 몰라. 아마 신전기사일거다.”
“신전기사가 왜 혼자서 이런 곳을 돌아다녀?”
“내가 어떻게 아냐? 어쨌든 말조심해라.”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조용하게 말소리가 오갔다. 레블도 그다지 깨어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잠든 상태였다. 레블은 봉인된 이후로 야누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잠든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잠을 자야할 만큼의 피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야누스를 만난 이후로는 가끔 마력도 사용하게 되었고 대화도 하고 가끔 신경 쓸 일도 생기면서 가끔 잠을 자게 되었다. 그리고 레블은 봉인된 이후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뭐야? 왜 움직일 수 있지? 야누스는? 용병들은? 여긴 마차 안이 아닌데?’
레블은 봉인되기 전의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리고 레블이 있는 곳은 마차 안이 아닌 마계에서 지내던 성의 자신의 방이었다.
‘꿈이구나.’
레블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자신이 기억하는 성의 복도였다. 복도를 따라 끝없이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어?”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레블은 방으로 돌아와 발코니로 나갔다. 늘 보던 마계의 풍경이 있었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심심한 꿈이군.”
레블은 무심코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야누스가 서있었다. 평소처럼 로브를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후드를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긴 흑발과 왼쪽이 검고 오른쪽이 붉은 오드아이였다. 목에는 블루문을 목도리처럼 감고 있었다. 달빛도 없는데 달빛을 받는 것처럼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야누스?”
야누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레블은 야누스에게 손을 뻗었으나 손은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야누스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발코니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레블은 자신이 검을 차고 있던 왼쪽 허리로 손을 가져가 검을 뽑았다. 검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 옆을 보니 야누스의 허리에도 검이 있었다. 레블이 만들었고 사용했고 봉인되어버린 검이었다.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뭘 하는 거냐?”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조각상처럼 서서 바깥을 바라보기만 했다. 레블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누스는 저렇게 미묘한 표정을 하지 않았다. 그림으로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지만 꿈은 그림이 아니었다. 만질 수도 없었다. 꿈이건 아니건 간에 야누스를 한 번 만져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불가능했다.
“젠장, 꿈이면 내 맘대로 되어야하는 거 아니야?”
레블은 꿈에서 깨어났다. 원래대로 마차 안이었고 자신은 검에 봉인되어있었고 야누스는 아직 자고 있었다. 용병들도 조용했다.
‘오랜만에 꾼 꿈이었는데.’
[그렇겠지. 당분간은 편하게 말할 수 있겠어.]
“북문의 길을 따라가면 에토 영지가 나온다했고 도중에 비하인 영지를 통과해야한다고 했는데 비하인 영지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는 모르겠네.”
[대충 10일 전후로 도착하겠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문제야.]
“물은 물병에 충분히 채웠고 식량도 충분히 챙겼으니 별 문제는 없을 거야. 암살자들만 빼면.”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더 이상 암살을 시도하지는 않을 테니까. 물론 추적은 하겠지.]
“어째서?”
[마지막으로 왔던 놈들이 가장 실력이 좋은 암살자에 속하는 놈들이었을 거다. 그런 실력자들도 실패했으니 더 이상의 암살시도는 희생만 늘릴 뿐이라는 걸 알았겠지. 거기다 경고문구도 꺼림칙할 테니까. 하지만 네트페르스를 포기할 수는 없을 테니 어느 신전에 전달하는지 알기위해서 추적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경고문구가 왜? 그건 그냥 쫒아오지 말라는 뜻인데.”
[넌 그렇게 썼지만 상황과 상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지. 이런 경우에는 아마도 계속 귀찮게 하면 모조리 없애버린다는 뜻이 될 걸.]
“내가 암살자들을 모조리? 어디에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몰라도 돼. 해석하는 건 그놈들이니까.]
“그래? 그럼 또 덤비면 아주 확실하게 죽여야겠네.”
[생각은 완전히 마족이 다됐군.]
“칭찬이지?”
[야누스.]
“응?”
[잊지 마라. 강한 힘에는 항상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혹은 소중한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간에. 신이 아닌 한 이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 얘기는 전에도 했잖아.”
[잊지 마라.]
“쳇, 알았어.”
지루한 걸음이 반복되었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벌레 한 마리 지나가지 않았다. 가끔씩 후드를 벗기는 바람과 대지를 뒤덮은 초록색 풀, 그리고 여기저기 서서 옆의 시야를 가로막는 나무들이 있을 뿐이었다. 물을 마시고 식량을 먹고 밤이 되면 잠을 자는, 그런 지루한 시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짧았다. 3일 째 되는 날, 처음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인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인간이 인생은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하는 건 운명이 인간에게 쉴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야. 만약 인간에게 쉴 틈이 있다면 그건 다친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주어진 아주 짧은 회복기일 뿐이지.”
[헛소리군.]
“어차피 다른 종족은 이해 못해.”
[그래서?]
“회복기 끝났다고.”
말을 끝맺은 순간, 야누스는 검을 뽑고 눈에 보이는 움직이는 것들에게 달려갔다. 숫자가 많았다. 야누스는 그것들을 본 적이 있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태어나서 가장 처음 본 마물, 레블과의 첫 만남, 계약, 처음으로 무언가를 죽였던 기억.
“자이언트 맨티스.”
야누스가 검을 앞으로 겨누고 뛰어올랐다. 파란색 검기가 맺힌 검이 순식간에 자이언트 맨티스의 머리를 꿰뚫었다. 자이언트 맨티스의 등에 착지한 야누스는 검을 빼면서 뒤로 뛰어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는 자이언트 맨티스들의 사이를 뛰어다니며 무차별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여기저기서 녹색 피가 뿜어져 나왔다.
“뭐야! 누구냐!”
‘누가 있나?’
"젠장!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이놈들 좀 처리해줘!”
“방해나 하지 마.”
야누스의 음성이 소리를 지른 사람들의 귓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모두 그 목소리에 살기가 담겨있는 것을 부정하지 못했다. 녹색 피는 계속 공중에 흘러나왔다. 자이언트 맨티스들의 숫자가 어느 정도 줄어들자 야누스의 눈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도 야누스를 보고 있었다. 자이언트 맨티스들도 상황을 알고 야누스만을 노리고 있었기에 그 사람들은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덩치가 크고 검을 든 사람이 7명. 그리고 짐마차 3대.’
야누스는 그들에게서 신경을 끄고 검을 휘두르는데 집중했다. 원래 이렇게 마물을 죽이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지난 3일의 지루함은 이상하게 화가 났다. 이보다 더 길게 지루했던 적도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뭔가에 화를 쏟아내고 싶었다.
‘상단과 호위용병인가.’
자이언트 맨티스들이 모두 전멸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이리저리 빠르게 뛰어다녔기 때문인지 검은 로브에는 끈적거리는 녹색 피가 그다지 많이 묻지 않았다. 야누스는 검을 흔들어 피를 털어내고 검을 다시 허리에 매었다. 칼집이 없으니 허리끈과 옷 사이에 넣어 고정시켰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왜요?”
“아니, 아무것도.”
기분이 풀려서 야누스는 평소의 상태로 되돌아왔고 목소리는 살기가 없어 듣기 좋은 미성이 되었지만 아까의 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이언트 맨티스들을 전멸시킨 실력 때문인지 모두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당신들은 누구죠?”
“우리는 레드 용병대다. 호위에 고용된 용병대지. 갑자기 자이언트 맨티스들이 나타나서 위험했는데 도와줘서 고맙다.”
“어디로 가는 중인데요?”
“비하인 영지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나오지.”
“마차를 타고 가면 걸어가는 것보다 빠르겠죠?”
“물론! 우리를 구해줬으니 얼마든지 태워줄 수 있어.”
“고마워요. 그럼 가요. 피 냄새를 맡고 다른 마물이 올지도 모르니까.”
“그래야지. 다들 마차에 올라타! 이보쇼! 어서 출발합시다!”
야누스는 용병들을 따라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 안에 숨어있던 상인인 것 같은 사람이 밖으로 나와 고삐를 잡고 말을 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죽을 뻔했던 위험한 상황인데도 의외로 모두 침착하게 행동했다.
“다들 침착하네요.”
“용병 짓을 하다보면 위험한 일이 많거든. 그때마다 놀라면 때려치워야지. 물론 이번에는 좀 많이 위험하긴 했지만.”
“아뇨, 상인들 말이에요.”
“뭐, 우리랑 같은 이유 아니겠냐? 그런데 아직 서로 소개를 안 했네?”
“오래 같이 지낼 것도 아닌데 굳이 소개할 필요가 있나요?”
야누스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위협할 생각은 없었지만 용병들에게는 섬뜩하게 들렸는지 재차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야누스는 뭔가가 풀려서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곤히 잠들었다. 그동안 어두워지면 길바닥에 누워서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걷기만 했으면서 암살자들 걱정에 편히 잘 수 없었던 탓인지 아주 편안하게 잠들었다. 야누스가 잠든 것을 확인한 용병들은 목소리를 낮춰 떠들기 시작했다.
“살벌하구만. 도대체 뭐하는 녀석이래?”
“정체는 모르겠지만 대단한 실력자다. 너희도 봤겠지? 푸른색의 검기 말이야.”
“봤지. 그렇지만 그걸로 대단한 실력자라고 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검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기사나 용병 중에도 제법 많잖아. 우리들 중에도 두 명이나 있으니까.”
“멍청아, 우리랑 같은 급인 줄 아냐? 우린 검기에 색이 없는 익스퍼트 초급이다. 검기에 색이 있으면 익스퍼트 중급으로 분류하는 거야. 검기가 색도 있고 짙으면 상급이고. 아까 봤는데 좀 옅지만 선명한 걸보니 중급과 상급의 중간쯤이야. 너희도 순식간에 자이언트 맨티스를 전멸시키는 걸 봤잖아.”
“확실히 실력이 엄청났지.”
“그래, 실전경험이 많다는 거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너희들은 저 녀석이 몇 살로 보이냐?”
“얼굴을 가려서 잘 모르겠지만 목소리랑 키로 봐서는 잘 봐도 아직 젊은 여자 같은데?”
“그거다. 그 나이에 여자가 저 정도 실력이라는 건 천재라는 거야. 거기다 들고 있는 지팡이가 특이하게 생겼어. 신의 문장일지도 몰라. 아마 신전기사일거다.”
“신전기사가 왜 혼자서 이런 곳을 돌아다녀?”
“내가 어떻게 아냐? 어쨌든 말조심해라.”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조용하게 말소리가 오갔다. 레블도 그다지 깨어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는지 잠든 상태였다. 레블은 봉인된 이후로 야누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잠든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잠을 자야할 만큼의 피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야누스를 만난 이후로는 가끔 마력도 사용하게 되었고 대화도 하고 가끔 신경 쓸 일도 생기면서 가끔 잠을 자게 되었다. 그리고 레블은 봉인된 이후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뭐야? 왜 움직일 수 있지? 야누스는? 용병들은? 여긴 마차 안이 아닌데?’
레블은 봉인되기 전의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리고 레블이 있는 곳은 마차 안이 아닌 마계에서 지내던 성의 자신의 방이었다.
‘꿈이구나.’
레블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자신이 기억하는 성의 복도였다. 복도를 따라 끝없이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아무도 만날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어?”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레블은 방으로 돌아와 발코니로 나갔다. 늘 보던 마계의 풍경이 있었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심심한 꿈이군.”
레블은 무심코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야누스가 서있었다. 평소처럼 로브를 입은 모습이 아니었다. 자신이 생각하던 후드를 쓰지 않은 모습이었다. 긴 흑발과 왼쪽이 검고 오른쪽이 붉은 오드아이였다. 목에는 블루문을 목도리처럼 감고 있었다. 달빛도 없는데 달빛을 받는 것처럼 푸른빛을 내고 있었다.
“야누스?”
야누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레블은 야누스에게 손을 뻗었으나 손은 그대로 통과해버렸다. 야누스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저 발코니에 서서 풍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레블은 자신이 검을 차고 있던 왼쪽 허리로 손을 가져가 검을 뽑았다. 검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손에 쥐어졌다. 옆을 보니 야누스의 허리에도 검이 있었다. 레블이 만들었고 사용했고 봉인되어버린 검이었다.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뭘 하는 거냐?”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조각상처럼 서서 바깥을 바라보기만 했다. 레블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누스는 저렇게 미묘한 표정을 하지 않았다. 그림으로는 이상적인 모습이었지만 꿈은 그림이 아니었다. 만질 수도 없었다. 꿈이건 아니건 간에 야누스를 한 번 만져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불가능했다.
“젠장, 꿈이면 내 맘대로 되어야하는 거 아니야?”
레블은 꿈에서 깨어났다. 원래대로 마차 안이었고 자신은 검에 봉인되어있었고 야누스는 아직 자고 있었다. 용병들도 조용했다.
‘오랜만에 꾼 꿈이었는데.’
다음회두 기대할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