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이상한 일⑧-
- 진청룡전설
- 715
- 2
비하인에서 출발한지 며칠이 지나서 도착한 어떤 작은 영지. 야누스는 식량과 물만 보충하고 마차에서 자고 싶었지만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걷고 있었다. 도착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디선가 붙은 미행이 신경 쓰였다. 미행하는 사람의 기척이 일전에 히아드에서 느꼈던 암살자들과 같은 느낌이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가? 그래봤자 네트페르스는 리티아가 가져갔는데.”
[저쪽에서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덤빌 생각은 못하는지 멀리서 감시만 하고 있군. 가지고 있으면 눈에 띄어야할 네트페르스는 보이지 않고 말을 걸면 죽일 것 같아서 물어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겠지.]
“그러게. 잃어버렸다고 가르쳐줄까?”
[그러던가.]
야누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한 장소를 찾아 영지 밖으로 나갔다. 성벽도 없는 영지라서 사람들이 없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쉬웠다. 자연히 미행도 따라왔지만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외부였기에 미행하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와. 다 아니까. 나오지 않으면 위험한 게 그쪽으로 날아갈 거야.”
한 사람이 야누스가 보이는 곳으로 나왔다. 야누스가 생각했던 대로 검은 천으로 몸을 가린 암살자였다. 틈이 있으면 도망칠 생각인지 야누스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낮에도 그러고 다니는 줄은 몰랐는데.”
“네트페르스는?”
“없어. 원래 주인이 가져갔거든. 더 이상 날 쫒아도 소용없다는 뜻이지. 자세한 건 묻지 마. 말하기 어려우니까. 알아들었으면 죽이기 전에 어서 사라져.”
야누스는 손을 뻗어 작은 블리스를 하나 만들었다. 단순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죽이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야누스가 눈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자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암살자는 즉시 도망쳤다. 그냥 죽일지 생각하던 야누스는 쓸데없이 마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블리스를 없앴다.
[어느 쪽이 가면이지?]
“가면은 없어. 둘 다 내 모습이야.”
[의외로 이중성이 있군.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심한데?]
“무슨 뜻이지?”
[인간으로서의 너. 그리고 이드리아스로서의 너. 지금은 두 종족의 중간에 있는 미묘한 상태라 이중성이 심해. 완전히 이드리아스로 변해면 인간으로서의 너는 흐려지겠지만.]
“내가 완전히 이드리아스로 변하는 건 언제일까?”
[아마 10년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빠르면 2년 안에 완전히 변할 수도 있지.]
“10년이라. 생각보다는 짧네.”
[여관이 있는데 굳이 마차에서 자려는 이유는 돈 때문이지?]
“그렇지. 그리고 난 밖에서 자는 게 익숙하거든. 게다가 용병들 술자리에 끼기도 싫고. 난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취하면 꼴사나운데 무슨 비밀을 말해버릴지도 모르잖아.”
[아직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그런가?”
해가 지고 있었다. 밤거리를 돌아다닐 생각도 없었고 말도 없이 일행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이상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행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어차피 여관에 들어갈 일도 없겠지만 최소한 자기가 마차에 있다는 것은 알려야했다. 내일 여관에서 자신을 찾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관으로 돌아간 야누스는 마차에서 자겠다고 말하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분위기도 좋아서 잠시 용병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미즈가 술을 주었지만 마실 생각이 없었기에 거절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해 굴이 점점 붉어지자 그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섰다. 그런데 문이 열리면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누스! 오랜만이다!”
리티아가 활짝 웃으며 야누스를 끌어안았다. 야누스에게서 가져간 검은 로브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찢어진 후드는 고쳤는지 멀쩡했고 네트페르스는 여전히 목걸이로 걸고 있었다. 리티아는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멈칫한 야누스의 손을 잡고 끌고 가서 앉으면서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자연스럽게 용병들의 시선이 리티아와 야누스에게 고정되었다.
‘리티아가 이번엔 무슨 장난을 치려고?’
-어떻게든 빠져나가!
-무슨 수로?
-다 들리거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왜 왔어요?
-그야 예쁘게 생긴 네 눈이 보고 싶어서.
“미인께서는 야누스와 아는 사이신가?
“당연하지. 야누스와 아주 미묘한 관계라고나 할까? 이름은 비밀.”
“이야, 야누스 재주 좋네. 이런 미인과 미묘한 관계라니.”
“정신 차려, 멍청아. 야누스는 여자야. 좀 남자 같은 성격이지만.”
야누스는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도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움직이려고 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아서 숙이고 있는 고개도 들 수 없었다.
“잔만 줄래? 술은 있으니까.”
리티아는 미즈가 주는 빈 잔을 받고 로브 속에서 흰색 술이 든 투명한 병을 꺼내어 잔에 따르고 마셨다. 술에서 미묘한 향기가 퍼졌다. 야누스도 그 향기를 맡았다. 매혹적인 향기였는데 비슷한 향기를 맡았던 느낌이 희미하게 들었다.
“향기가 좋은데? 나도 한 잔만 줄 수 있나?”
“싫어. 이건 내가 좋아하는 술이거든. 야누스라면 한 잔 줄 수도 있지만.”
한 용병의 부탁을 거절하고 잔을 비운 리티아는 다시 한 잔을 따랐다. 그리고 그 잔을 야누스의 입에 대고 흘려 넣었다. 움직일 수가 없는 야누스는 리티아가 손가락으로 턱을 잡아 올리고 잔을 입에 대고 기울이는 대로 인형처럼 따라 움직였다.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느낌이 입안에 퍼졌다.
-그걸 마시면 어떡해!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어쩌란 말이야!
-젠장, 독은 아니겠지? 뭐 같아?
-독은 아닌 것 같아. 제법 맛있는데?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보통 술이 아니군. 아주 독한 술이야. 네가 술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가 문제군.
-그런데 이 향기는 어디서 맡아본 것 같은데. 잠깐, 독한 술? 화이트블랙?
리티아는 야누스의 입에 술을 흘려 넣고 다시 자신이 한 잔을 마시고 로브 속에 술병을 넣었다. 용병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각자의 잔에 담긴 술을 마셨다. 야누스는 계속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했다. 정말로 독한 술인지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리티아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야누스에 대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어어? 자나?”
시간이 지나서 야누스가 완전히 취한 상태에서 리티아가 야누스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던 것을 풀고 눈앞에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러나 야누스는 취해서 풀린 눈으로 멍하니 리티아가 손을 흔드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거 마시고 취한건가? 술에 약하나보네.”
-애가 그렇게 독한 술을 마시면 당연히 취하지!
-인간은 16세가 되면 아이가 아닐 텐데?
-이드리아스로서는 애야! 그것도 한참 어린!
“그래서 내가 주는 술을 거절했군. 그런데 당신이 주는 술은 왜 마셨지?”
“그야 내가 주는 거니까.”
“하아? 도대체 어떤 미묘한 관계야?”
“비밀. 이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 내가 데리고 자야겠네.”
-무슨 짓을 하려고!
-걱정 마. 지금은 밤이잖아? 야누스도 여자고 나도 여자야.
리티아는 돈을 내고 야누스를 방으로 옮겼다. 리티아가 야누스와 친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취한 야누스는 조용히 리티아에게 들려갔다.
“너 진짜 취했어?”
리티아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야누스의 후드를 벗겨 얼굴을 확인했다. 눈이 풀려서 초점이 없고 잠든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리티아는 야누스를 밀어 침대에 눕히자 레블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엔 무슨 장난을 치려고 왔지?]
“맞춰봐.”
[죽인다!]
야누스의 손이 검을 잡았다. 야누스의 몸이 힘없이 움직이며 검으로 리티아를 찌르려했지만 리티아가 옆으로 살짝 피하자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접촉하지 않아도 조종할 수 있다니 제법이네.”
[내 계약자다. 내 마력을 받았으니 이런 조종은 간단하지.]
“조종할 수 있어봤자 술 취한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잖아?”
[그럼 막아보시지.]
야누스의 몸이 다시 일어서 검을 내질렀다. 리티아는 살짝 피하면서 야누스의 손목을 잡고 손에서 검을 빼앗으며 침대로 밀어서 쓰러뜨렸다. 야누스의 몸은 침대에 엎어졌고 검은 리티아의 손에 쥐어졌다.
“소용없다니까.”
[젠장, 반드시 그 얼굴에 칼자국을 내주겠어.]
“신에게 그 말투는 뭐야?
[신이 신 같아야지.]
“건방지네.”
리티아는 검을 그대로 바닥에 찔러 박아버리고 침대에 앉아 엎어진 야누스의 몸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레블이 보도록 검을 정면으로 보며 야누스의 턱을 들어 얼굴을 돌렸다.
[내 계약자 건드리지 마!]
리티아는 비웃음을 띠고 검을 바라보며 야누스의 볼을 혀로 핥았다. 야누스는 여전히 풀린 눈으로 잠시 몸을 떨었지만 금방 잠잠해졌다. 눈이 감기지 않았을 뿐 완전히 잠든 것 같았다.
[그만 두지 못해! 죽인다!]
“할 수 있으면 해봐.”
리티아는 비웃음을 날리며 야누스에게 입을 맞췄다. 레블이 소리를 질렀지만 검에 봉인되어있는 레블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위협이 되지 않는데다 야누스와 바짝 붙어있어서 마법을 쓸 수도 없었다.
“좋아해?”
[뭐?]
“야누스를 좋아해? 그게 아니면 그렇게 심한 반응을 보일 이유가 있어?”
[야누스는 내 계약자고 언젠가는 내가 쓸 몸이다. 건드리는 건 용서 못해.]
“계약자에게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어. 언젠가 쓸 몸이라는 것도 핑계. 원래 몸을 봉인에서 풀 때까지 임시로 쓰려고 했잖아? 네 생각을 읽는 것 정도는 나한테 쉬워.”
[그래서? 내가 야누스를 좋아하던지 싫어하던지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나도 맘에 들거든.”
[뺏어보시지. 어차피 야누스는 내 계약자니까.]
“원한다면 얼마든지 뺏어주지.”
----------
리티아가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 원인은 나중에 밝혀집니다.
그리고 야누스라 여자라는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자들의 착각입니다.
야누스는 낮에는 남자, 밤에는 여자이지만 얼굴과 목소리는 여자에 가까우므로 로브를 입고 후드를 덮어쓰면 대부분은 여자로 착각합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건가? 그래봤자 네트페르스는 리티아가 가져갔는데.”
[저쪽에서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덤빌 생각은 못하는지 멀리서 감시만 하고 있군. 가지고 있으면 눈에 띄어야할 네트페르스는 보이지 않고 말을 걸면 죽일 것 같아서 물어볼 수가 없으니 답답하겠지.]
“그러게. 잃어버렸다고 가르쳐줄까?”
[그러던가.]
야누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조용한 장소를 찾아 영지 밖으로 나갔다. 성벽도 없는 영지라서 사람들이 없는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쉬웠다. 자연히 미행도 따라왔지만 몸을 숨길 곳이 없는 외부였기에 미행하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와. 다 아니까. 나오지 않으면 위험한 게 그쪽으로 날아갈 거야.”
한 사람이 야누스가 보이는 곳으로 나왔다. 야누스가 생각했던 대로 검은 천으로 몸을 가린 암살자였다. 틈이 있으면 도망칠 생각인지 야누스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낮에도 그러고 다니는 줄은 몰랐는데.”
“네트페르스는?”
“없어. 원래 주인이 가져갔거든. 더 이상 날 쫒아도 소용없다는 뜻이지. 자세한 건 묻지 마. 말하기 어려우니까. 알아들었으면 죽이기 전에 어서 사라져.”
야누스는 손을 뻗어 작은 블리스를 하나 만들었다. 단순한 위협이었다. 그러나 죽이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야누스가 눈을 찌푸리며 불쾌하다는 표정을 짓자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암살자는 즉시 도망쳤다. 그냥 죽일지 생각하던 야누스는 쓸데없이 마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블리스를 없앴다.
[어느 쪽이 가면이지?]
“가면은 없어. 둘 다 내 모습이야.”
[의외로 이중성이 있군.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심한데?]
“무슨 뜻이지?”
[인간으로서의 너. 그리고 이드리아스로서의 너. 지금은 두 종족의 중간에 있는 미묘한 상태라 이중성이 심해. 완전히 이드리아스로 변해면 인간으로서의 너는 흐려지겠지만.]
“내가 완전히 이드리아스로 변하는 건 언제일까?”
[아마 10년은 더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빠르면 2년 안에 완전히 변할 수도 있지.]
“10년이라. 생각보다는 짧네.”
[여관이 있는데 굳이 마차에서 자려는 이유는 돈 때문이지?]
“그렇지. 그리고 난 밖에서 자는 게 익숙하거든. 게다가 용병들 술자리에 끼기도 싫고. 난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취하면 꼴사나운데 무슨 비밀을 말해버릴지도 모르잖아.”
[아직 마셔본 적도 없으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그런가?”
해가 지고 있었다. 밤거리를 돌아다닐 생각도 없었고 말도 없이 일행에서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이상한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행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어차피 여관에 들어갈 일도 없겠지만 최소한 자기가 마차에 있다는 것은 알려야했다. 내일 여관에서 자신을 찾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관으로 돌아간 야누스는 마차에서 자겠다고 말하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잠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분위기도 좋아서 잠시 용병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리에 앉았다. 미즈가 술을 주었지만 마실 생각이 없었기에 거절했다. 사람들이 술에 취해 굴이 점점 붉어지자 그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섰다. 그런데 문이 열리면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누스! 오랜만이다!”
리티아가 활짝 웃으며 야누스를 끌어안았다. 야누스에게서 가져간 검은 로브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찢어진 후드는 고쳤는지 멀쩡했고 네트페르스는 여전히 목걸이로 걸고 있었다. 리티아는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멈칫한 야누스의 손을 잡고 끌고 가서 앉으면서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자연스럽게 용병들의 시선이 리티아와 야누스에게 고정되었다.
‘리티아가 이번엔 무슨 장난을 치려고?’
-어떻게든 빠져나가!
-무슨 수로?
-다 들리거든.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왜 왔어요?
-그야 예쁘게 생긴 네 눈이 보고 싶어서.
“미인께서는 야누스와 아는 사이신가?
“당연하지. 야누스와 아주 미묘한 관계라고나 할까? 이름은 비밀.”
“이야, 야누스 재주 좋네. 이런 미인과 미묘한 관계라니.”
“정신 차려, 멍청아. 야누스는 여자야. 좀 남자 같은 성격이지만.”
야누스는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입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도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움직이려고 해도 미동조차 하지 않아서 숙이고 있는 고개도 들 수 없었다.
“잔만 줄래? 술은 있으니까.”
리티아는 미즈가 주는 빈 잔을 받고 로브 속에서 흰색 술이 든 투명한 병을 꺼내어 잔에 따르고 마셨다. 술에서 미묘한 향기가 퍼졌다. 야누스도 그 향기를 맡았다. 매혹적인 향기였는데 비슷한 향기를 맡았던 느낌이 희미하게 들었다.
“향기가 좋은데? 나도 한 잔만 줄 수 있나?”
“싫어. 이건 내가 좋아하는 술이거든. 야누스라면 한 잔 줄 수도 있지만.”
한 용병의 부탁을 거절하고 잔을 비운 리티아는 다시 한 잔을 따랐다. 그리고 그 잔을 야누스의 입에 대고 흘려 넣었다. 움직일 수가 없는 야누스는 리티아가 손가락으로 턱을 잡아 올리고 잔을 입에 대고 기울이는 대로 인형처럼 따라 움직였다.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느낌이 입안에 퍼졌다.
-그걸 마시면 어떡해!
-몸이 말을 안 듣는데 어쩌란 말이야!
-젠장, 독은 아니겠지? 뭐 같아?
-독은 아닌 것 같아. 제법 맛있는데? 차가우면서도 뜨겁고.
-보통 술이 아니군. 아주 독한 술이야. 네가 술을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가 문제군.
-그런데 이 향기는 어디서 맡아본 것 같은데. 잠깐, 독한 술? 화이트블랙?
리티아는 야누스의 입에 술을 흘려 넣고 다시 자신이 한 잔을 마시고 로브 속에 술병을 넣었다. 용병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각자의 잔에 담긴 술을 마셨다. 야누스는 계속해서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했다. 정말로 독한 술인지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리티아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야누스에 대한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어어? 자나?”
시간이 지나서 야누스가 완전히 취한 상태에서 리티아가 야누스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던 것을 풀고 눈앞에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러나 야누스는 취해서 풀린 눈으로 멍하니 리티아가 손을 흔드는 것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거 마시고 취한건가? 술에 약하나보네.”
-애가 그렇게 독한 술을 마시면 당연히 취하지!
-인간은 16세가 되면 아이가 아닐 텐데?
-이드리아스로서는 애야! 그것도 한참 어린!
“그래서 내가 주는 술을 거절했군. 그런데 당신이 주는 술은 왜 마셨지?”
“그야 내가 주는 거니까.”
“하아? 도대체 어떤 미묘한 관계야?”
“비밀. 이대로 놔둘 수는 없으니 내가 데리고 자야겠네.”
-무슨 짓을 하려고!
-걱정 마. 지금은 밤이잖아? 야누스도 여자고 나도 여자야.
리티아는 돈을 내고 야누스를 방으로 옮겼다. 리티아가 야누스와 친하다고 생각하는지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취한 야누스는 조용히 리티아에게 들려갔다.
“너 진짜 취했어?”
리티아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그고 야누스의 후드를 벗겨 얼굴을 확인했다. 눈이 풀려서 초점이 없고 잠든 것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리티아는 야누스를 밀어 침대에 눕히자 레블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엔 무슨 장난을 치려고 왔지?]
“맞춰봐.”
[죽인다!]
야누스의 손이 검을 잡았다. 야누스의 몸이 힘없이 움직이며 검으로 리티아를 찌르려했지만 리티아가 옆으로 살짝 피하자 바닥에 그대로 엎어졌다.
“접촉하지 않아도 조종할 수 있다니 제법이네.”
[내 계약자다. 내 마력을 받았으니 이런 조종은 간단하지.]
“조종할 수 있어봤자 술 취한 몸은 제대로 움직이지 않잖아?”
[그럼 막아보시지.]
야누스의 몸이 다시 일어서 검을 내질렀다. 리티아는 살짝 피하면서 야누스의 손목을 잡고 손에서 검을 빼앗으며 침대로 밀어서 쓰러뜨렸다. 야누스의 몸은 침대에 엎어졌고 검은 리티아의 손에 쥐어졌다.
“소용없다니까.”
[젠장, 반드시 그 얼굴에 칼자국을 내주겠어.]
“신에게 그 말투는 뭐야?
[신이 신 같아야지.]
“건방지네.”
리티아는 검을 그대로 바닥에 찔러 박아버리고 침대에 앉아 엎어진 야누스의 몸을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레블이 보도록 검을 정면으로 보며 야누스의 턱을 들어 얼굴을 돌렸다.
[내 계약자 건드리지 마!]
리티아는 비웃음을 띠고 검을 바라보며 야누스의 볼을 혀로 핥았다. 야누스는 여전히 풀린 눈으로 잠시 몸을 떨었지만 금방 잠잠해졌다. 눈이 감기지 않았을 뿐 완전히 잠든 것 같았다.
[그만 두지 못해! 죽인다!]
“할 수 있으면 해봐.”
리티아는 비웃음을 날리며 야누스에게 입을 맞췄다. 레블이 소리를 질렀지만 검에 봉인되어있는 레블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위협이 되지 않는데다 야누스와 바짝 붙어있어서 마법을 쓸 수도 없었다.
“좋아해?”
[뭐?]
“야누스를 좋아해? 그게 아니면 그렇게 심한 반응을 보일 이유가 있어?”
[야누스는 내 계약자고 언젠가는 내가 쓸 몸이다. 건드리는 건 용서 못해.]
“계약자에게 이런 것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어. 언젠가 쓸 몸이라는 것도 핑계. 원래 몸을 봉인에서 풀 때까지 임시로 쓰려고 했잖아? 네 생각을 읽는 것 정도는 나한테 쉬워.”
[그래서? 내가 야누스를 좋아하던지 싫어하던지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나도 맘에 들거든.”
[뺏어보시지. 어차피 야누스는 내 계약자니까.]
“원한다면 얼마든지 뺏어주지.”
----------
리티아가 이런 이상한 짓을 하는 원인은 나중에 밝혀집니다.
그리고 야누스라 여자라는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자들의 착각입니다.
야누스는 낮에는 남자, 밤에는 여자이지만 얼굴과 목소리는 여자에 가까우므로 로브를 입고 후드를 덮어쓰면 대부분은 여자로 착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