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서치 로고

소설게시판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7세계 : 붉은 검 -소문⑥-

“어? 언제 왔지?”
사도가 눈을 감은지 얼마 되지 않아 슈아와 피에르가 방으로 돌아왔다. 잠든 것은 아니었지만 할 말이 없었기에 사도는 눈을 뜨지 않았다.
“매일 어디를 돌아다니지? 밖에 자주 나가지는 않던데.”
“도서관이겠지.”
“요즘엔 도서관에서도 일찍 나간다던데?”
“레나랑 연애하러 다니나?”
“그런가보지. 학부도 다른데 항상 같이 다니잖아.”
“그런 예쁜 애랑 연애라니, 부럽다. 나도 애인 만들까?”
“잘도 만들겠다. 그럴 여유 있으면 마법연습이나 해.”
“할 수 있거든? 빛나라.”
슈아의 손에서 아주 작은 빛이 떠올랐다. 아주 작았다.
“내 것보다 작잖아? 빛나라.”
피에르의 손에도 작은 빛이 떠올랐다. 작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슈아의 것보다 두 배는 컸다.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오래 유지하는 게 중요한 거야. 크나 작으나 밝은 건 똑같으니까. 그리고 난 다른 것도 할 수 있어. 불꽃!”
슈아의 손에 있던 빛이 사라지고 작은 불이 타올랐다.
“안 뜨거워?”
“안 뜨거워. 따뜻하기만 한데?”
불을 손으로 만져보려던 슈아와 피에르는 비명을 지르며 난리를 피우다 침대에 누웠다. 시끄러워서 잠들지 못한 사도도 조용해지자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순간 창문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번개?’
눈을 뜨고 창문 밖을 쳐다본 사도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보았다. 분명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곧 잠을 방해할 만큼 빗소리가 시끄러워졌다. 간간히 번개도 번쩍거리며 잠을 방해했다. 사도는 커튼으로 창문을 가렸다.
‘시끄러워.’
시간이 지나자 검은 하늘이 점점 회색으로 변해서 밤은 아닌 것은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빗소리 때문에 슈아와 피에르와 사도까지 모두 상당히 이른 시각에 잠에서 깼다. 어두워서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잠에서 깨었을 때의 몸의 상태가 이른 시각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비가 많이 오네.”
“그러게.”
슈아와 피에르가 몸을 쭉 뻗으며 길게 하품을 했다. 사도는 눈을 뜨고 숨을 고르고 난 후에 조용히 옷을 갈아입었다.
“어? 벌써 갈아입었어? 빠르네.”
“먼저 씻을게.”
사도는 벗어놓은 잠옷을 가방에 넣고 빠르게 씻은 후에 방을 나왔다. 슈아와 피에르는 자는 동안 굳어진 몸부터 천천히 풀었다. 씻는 것은 나중이었다.
“비가 정말 많이 오는데.”
바닥에는 이미 물이 가득했다. 비를 맞아도 상관없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기에 사도는 외부에 설치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천장만 있고 벽이 없기에 바람이 세게 불면 신발이 젖지만 바람이 약하면 비가 내리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기에 난간 여기저기에 여럿이, 혹은 혼자 기대어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것을 이해 못하는 자들도 제법 많았지만 방에 누워있는 것보다는 나으니 결국에는 나오기에 바람이 약하고 비가 내릴 때면 외부의 복도는 북적거렸다. 더군다나 비가 내리는 날은 마법학부의 학생들이 연습을 하기에도 좋았다.
“으윽, 젖었잖아.”
“마법으로 말려. 그것도 다 연습이니까. 야! 불 피우지 말고 말리라니까!”
“알았어! 젠장, 비가 와서 그런가? 불이 약한데?”
“원래 비가 오면 불이 제대로 안 붙어.”
“그런데 아침부터 이렇게 연습해야 돼?”
“나중에는 복도가 비좁아지는데다 여기저기서 연습한다고 정신없어져. 지금 해야 돼.”
이미 마법을 연습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연습이 서툴렀는지 옷이 약간 젖어있었지만 그것도 젖은 옷을 마법으로 말리는 연습에 쓰고 있었다.
‘시아나?’
연습하는 무리에 시아나가 있었다.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사도는 내색하지 않고 지나쳤다. 봤는지 못 봤는지 시아나는 사도가 지나가는 순간에도 연습에만 몰두했다. 그런데 복도 끝에서 브리스테어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도가 걷고 있는 복도는 갈래가 없는 일직선이었다. 복도를 지나며 마주쳤을 때 브리스테어가 말했다.
“열심이지 않나? 저렇게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
“나와는 상관없어.”
“그렇겠지. 비가 올 때면 외부의 복도가 학생들로 가득 찬다네. 바람만 세게 불지 않는다면 말이지. 시끄럽고 여기저기가 마법으로 난리지만 재미있다네. 나도 이곳의 학생이었던 시절에는 꽤 좋아했는데 늙으니 끼어들 수가 없게 되더군. 교사 건물의 복도에서 늙은이들끼리 잡담이나 하는 신세라네.”
“신세한탄이라면 듣고 싶지 않은데.”
“자네 아로라는 이름을 쓰지? 레나라는 검술학부의 학생과 연애한다는 소문이 있더군.”
“할 말이 그건가?”
“그건 아니네. 늙으면 말이 많아지거든. 할 말은 다른 것이네. 가끔씩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이면 도시 구석구석에 사는 쥐들이 밖으로 나와 난리를 피운다네. 그럼 도시에 사는 자들은 쥐를 쫒느라고 난리를 피우게 되지. 그런데 오늘 비를 보니 쥐들이 난리를 피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아아, 정말 싫은 일이야.”
“그것도 나와는 상관없어.”
“딱딱하기는.”
사도는 강의실로 가지 않았다. 학원은 학생들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가끔 수업에 빠지거나 며칠이나 학원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아도 문제는 없었다. 다만 수업에 빠지는 것은 자신이 손해이기 때문에 이유도 없이 수업을 빠지는 학생은 적었다. 특히 1학년과 2학년의 경우는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적을 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수업에 빠질 건가?”
“당신과는 상관없잖아.”
“그렇지.”
빗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비가 오는 것은 어느 세계나 다르지 않았다. 제2세계에서 비는 반가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었다. 제2세계에서의 비는 잠시의 휴식이었고 무지개의 예고였다. 가끔씩 불어오는 폭풍이 문제였지만 술법을 사용하는 자들 중 일부에게는 오히려 힘을 모으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슬슬 학생들이 나오는군. 그럼 이 늙은이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브리스테어가 사라지자 사도는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으며 복도를 채우고 있었다.
“아로?”
“레나?”
레나도 여학생들과 함께 자리를 찾으러 나온 것 같았다. 레나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비 좋아해?”
“가끔은.”
“여기 있어도 돼?”
“그러던가.”
레나는 사도의 옆에 자리를 잡았고 같이 왔던 여학생들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레나는 멍하니 비가 내리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다.
“이렇게 보니까 늘 보던 것도 다르게 보이네.”
“어.”
“무슨 대답이 그래?”
“비는 어디를 가나 같아. 보이는 게 다를 뿐이지.”
“그야 그렇겠지.”
사도는 대화에 열의가 없었다. 레나는 대답하지 않는 사도를 상대로 열심히 말을 걸었고 사도는 무성의한 대답만을 이어갔다.
“뭐야! 쥐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여기저기서 쥐들이 뛰쳐나왔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굴이 물에 잠기면서 뛰쳐나오는 것들이었다. 비가 내릴 때마다 흔히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비가 이처럼 많이 내리는 경우는 그 정도가 심했다.
“굴이 물에 잠기니 뛰쳐나오는 게 당연하지.”
“엄청 많네?”
“진짜 문제는 저게 아닌 것 같은데.”
사도는 먼 도시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워서 확실히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가 허공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보이는 것은 사도뿐인 것 같았다. 가깝다면 아키레나도 볼 수 있었지만 너무 멀고 어두웠다.
‘귀신들이 움직이는군.’
흔한 일이었다. 비가 많이 내리고 어두워지면 모든 생명체들의 움직임이 줄어들어 생기가  약해지는데 그러면 귀신들이 활동하기 편해지기 때문에 가만히 있던 귀신들이나 어두운 곳에서만 움직이던 귀신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얌전히 환생하거나 소멸할 것이지 왜 귀신으로 남는지 모르겠군. 살아있는 이상 평생 모르겠지만.’



----------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해주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포인트랭킹

1 대전 93,656P
2 세니 84,344P
3 아기곰 75,855P
4 미미미 71,148P
5 개편 67,128P
6 바담풍 61,777P
7 스윗티 53,104P
8 추억은별처럼 48,754P
9 전투법사@연 44,941P
10 고박사 44,33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