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계 : 붉은 검 -사도③-
- 진청룡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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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는 곧바로 수도를 벗어났다. 다행인지 아닌지 별다른 사건도 없이 수도를 벗어날 수 있었기에 사도는 곧바로 카리아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카리아가 있는 곳을 향해 사도는 힘껏 뛰어올랐다. 카리아가 있는 곳은 헤론에서 멀었다. 이노시아의 국경에서도 아주 멀리 벗어나야했다. 사도는 허공을 달렸다. 닿을 것이 없는 허공을 가볍게 밟으며 나는 듯이 하늘을 한가롭게 뛰어다녔다. 한 번 딛을 때마다 나아가는 거리가 길어서 달리는 것보다는 나는 것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밤하늘을 날아 사도가 도착한 곳은 오래된 산이었다. 이미 어둠은 많이 흐려져 있어서 아래가 잘 보였다. 사도는 여러 산의 사이에 있는 넓은 평지까지 내려섰다. 한 건물이 있었다. 넓은 것에 비해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낮은 것도 아니었다. 밖은 단조로웠다. 담이나 울타리는 없고 붉은 벽은 시간의 영향으로 빛이 바래져있었다. 사도는 안으로 들어갔다. 사도의 기억대로 하나의 넓은 공간만 있을 뿐 내부를 나누는 벽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없지는 않았는데.”
중얼거림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안의 벽도 빛이 바래져있었고 나무로 된 바닥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다. 정면에 멀리 보이는 벽은 빛바랜 붉은색이 아니었다. 천장에 매달린 천이 벽과 거리를 두고 바닥까지 늘어져서 마치 건물 안을 두 개의 방으로 나누는 것 같았다. 사도의 기억에는 저 뒤에 카리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사도는 가까이 갔다. 본래는 얇고 투명해서 반대편이 보였지만 먼지가 쌓여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사도가 손으로 먼지를 가볍게 쓸어내자 천장에 힘겹게 매달려있던 천은 힘없이 떨어졌다. 천이 떨어지고 반대편의 벽이 드러났다. 카리아는 없었다. 항상 카리아가 앉아있던 반대편 공간의 중앙인 자리에는 먼지가 쌓인 아래로 무언가가 보였다. 그림인 것 같았다.
사도는 자세히 보려고 손으로 먼지를 치우려고 했다. 먼지를 치우던 사도의 손이 그 그림에 닿자 빛이 나면서 약한 바람이 일어났다. 바람이 그림 위에 있던 먼지들을 날려 보내면서 그림의 드러났다. 그림이 아니라 진이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복잡하고 넓었다.
“사도.”
목소리가 들렸다. 사도가 기억하는 카리아의 목소리였다. 빛이 사라지면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무 길어서 바닥에 늘어진 새하얀 머리카락과 새하얀 옷, 붉은 눈동자와 입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젊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사도가 기억하는 카리아의 모습 그대로였다. 카리아는 사도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항상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있었다.
“당신이 지금 이것을 보고 있다면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는 뜻이겠지요.”
“카리아?”
“이것은 제 모습이 기록된 환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은 하지 못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수명이 다하기 전에 당신이 나를 찾아와주기를 바라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기에 이것을 남깁니다. 아마 당신이 찾아왔을 때면 이곳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부디 이 진마저 사리지기 전에 와주기를 바랍니다.”
“그래, 왔어.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지만.”
“저는 이 세계의 인간의 왕으로서 오랜 시간을 살았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이라기에는 조금 긴 시간이었죠. 하지만 저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죽으면 제 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겠죠.”
“그렇게 된 것 같군.”
“저는 인간의 왕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재이기에 저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과 동등한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저를 왕으로 대해주기만 했으니까요. 오직 당신만이 저를 인간으로서, 친구로서 대해주었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머무는 시간은 항상 너무나 짧았지만요. 당신은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힘든 일임에도 당신은 언제나 도망치지 않았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내 곁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기억하나요? 당신이 웃을 때면 나도 웃었다는 것을.”
카리아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다시 카리아가 눈을 떴지만 여전히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도 카리아는 미소를 띠었다.
“나는 알고 싶었지만 지금껏 알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이름입니다.”
“내 이름…?”
“당신은 아무에게도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도라고 부르라고만 했을 뿐이죠. 아마 당신이 그렇게 말해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런 걸 왜 알고 싶었던 거지?”
“나는 당신에게 여러 번 부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부탁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내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곁에…?”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곁에 있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 당신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카리아라는 여자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만은 부디 기억해주시길. 나의 사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리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도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푸른색의 거대한 번개가 건물을 향해 떨어졌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건물은 사라지고 번개의 커다란 흔적만이 남았다.
“기억할게, 카리아.”
사도의 마음속에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사도는 언젠가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지금과 같은 감정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오른쪽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를 주었던 사람에게서 가끔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었다. 카리아가 답을 가르쳐주었다.
‘카리아, 넌 왜 말하지 않았던 거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나에게 말했어야했어. 너나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말했어야했어.’
번개의 흔적을 뒤로하고 위로 오르던 사도는 뒤를 돌아보았다. 카리아가 울던 모습이 생각났다. 사도는 눈물이 싫었다. 그래서 슬플 때나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는 화를 냈다. 그리고 지금도 화가 났다.
‘카리아를 만나야겠어. 연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어. 영혼이라도 어딘가에 있겠지.’
“우우~!”
“늑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도는 이미 공중에서 땅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늑대들이 주변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땅에 내려선 사도는 주위로 모여드는 늑대들을 내쫓지 않고 보기만 했다. 늑대들은 사도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에게 늑대는 그다지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이미 검을 뽑아서 몇 마리 베었을 텐데, 카리아를 찾기 전에 일단 본래 성격부터 되찾아야겠군.”
사도는 양 허리에 매어진 두 자루의 검을 뽑았다. 선명한 붉은색이 익숙했다. 사도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달려가 늑대를 베었다. 사도의 몸놀림은 늑대보다 훨씬 빨랐다. 처음 한 마리, 그리고 연이어 세 마리. 아마 베이기 직전에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피하지는 못했다. 동료들의 피가 공중으로 솟구치자 늑대들이 한꺼번에 사도에게 몰려들었다. 사도는 늑대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움직여서 베었다. 나뭇잎 자르듯이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늑대의 시체가 생겨났다. 붉은 검이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늑대들의 시체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사도에게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위험한 상대라고 늑대들이 깨닫기도 전에 사도는 몰려든 늑대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검에 피가 흘렀지만 피와 똑같은 검의 색 때문에 마치 검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허공에 짧게 검을 휘두르자 피가 떨어져나가며 검이 깨끗해졌다.
“실력은 녹슬지 않았군. 그럼 어디에서부터 찾아야할까, 가까이에는 없는 것 같은데.”
사도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껏 가본 적이 없는 곳부터 가보기로 결정했다.
“이 세계에서 가본 적이 없는 나라라면 마르셀이군. 마르셀이라면 저기인가?”
사도는 마르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멀지만 사도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서둘러야할 이유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느꼈던 높은 곳의 바람이 시원했기에 사도는 또다시 허공에 발을 디디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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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날아 사도가 도착한 곳은 오래된 산이었다. 이미 어둠은 많이 흐려져 있어서 아래가 잘 보였다. 사도는 여러 산의 사이에 있는 넓은 평지까지 내려섰다. 한 건물이 있었다. 넓은 것에 비해 높이는 그다지 높지 않았지만 낮은 것도 아니었다. 밖은 단조로웠다. 담이나 울타리는 없고 붉은 벽은 시간의 영향으로 빛이 바래져있었다. 사도는 안으로 들어갔다. 사도의 기억대로 하나의 넓은 공간만 있을 뿐 내부를 나누는 벽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없지는 않았는데.”
중얼거림에 대한 대답은 없었다. 안의 벽도 빛이 바래져있었고 나무로 된 바닥에는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다. 정면에 멀리 보이는 벽은 빛바랜 붉은색이 아니었다. 천장에 매달린 천이 벽과 거리를 두고 바닥까지 늘어져서 마치 건물 안을 두 개의 방으로 나누는 것 같았다. 사도의 기억에는 저 뒤에 카리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사도는 가까이 갔다. 본래는 얇고 투명해서 반대편이 보였지만 먼지가 쌓여서 안이 보이지 않았다. 사도가 손으로 먼지를 가볍게 쓸어내자 천장에 힘겹게 매달려있던 천은 힘없이 떨어졌다. 천이 떨어지고 반대편의 벽이 드러났다. 카리아는 없었다. 항상 카리아가 앉아있던 반대편 공간의 중앙인 자리에는 먼지가 쌓인 아래로 무언가가 보였다. 그림인 것 같았다.
사도는 자세히 보려고 손으로 먼지를 치우려고 했다. 먼지를 치우던 사도의 손이 그 그림에 닿자 빛이 나면서 약한 바람이 일어났다. 바람이 그림 위에 있던 먼지들을 날려 보내면서 그림의 드러났다. 그림이 아니라 진이었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복잡하고 넓었다.
“사도.”
목소리가 들렸다. 사도가 기억하는 카리아의 목소리였다. 빛이 사라지면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너무 길어서 바닥에 늘어진 새하얀 머리카락과 새하얀 옷, 붉은 눈동자와 입술,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젊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사도가 기억하는 카리아의 모습 그대로였다. 카리아는 사도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항상 앉아있던 자리에 앉아있었다.
“당신이 지금 이것을 보고 있다면 다시 이곳을 찾아왔다는 뜻이겠지요.”
“카리아?”
“이것은 제 모습이 기록된 환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은 하지 못합니다. 저에게 주어진 수명이 다하기 전에 당신이 나를 찾아와주기를 바라지만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기에 이것을 남깁니다. 아마 당신이 찾아왔을 때면 이곳에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부디 이 진마저 사리지기 전에 와주기를 바랍니다.”
“그래, 왔어.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버렸지만.”
“저는 이 세계의 인간의 왕으로서 오랜 시간을 살았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수명이라기에는 조금 긴 시간이었죠. 하지만 저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죽으면 제 곁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겠죠.”
“그렇게 된 것 같군.”
“저는 인간의 왕입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동등한 존재이기에 저 역시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과 동등한 인간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두 저를 왕으로 대해주기만 했으니까요. 오직 당신만이 저를 인간으로서, 친구로서 대해주었습니다. 당신이 내 곁에 머무는 시간은 항상 너무나 짧았지만요. 당신은 해야만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힘든 일임에도 당신은 언제나 도망치지 않았죠.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이 내 곁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기억하나요? 당신이 웃을 때면 나도 웃었다는 것을.”
카리아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다시 카리아가 눈을 떴지만 여전히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면서도 카리아는 미소를 띠었다.
“나는 알고 싶었지만 지금껏 알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이름입니다.”
“내 이름…?”
“당신은 아무에게도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그저 사도라고 부르라고만 했을 뿐이죠. 아마 당신이 그렇게 말해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진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그런 걸 왜 알고 싶었던 거지?”
“나는 당신에게 여러 번 부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부탁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들이 아니었습니다. 내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습니다.”
“곁에…?”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곁에 있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이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어느 순간부터 당신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방법으로라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도 카리아라는 여자가 당신을 사랑했다는 것만은 부디 기억해주시길. 나의 사도.”
그 말을 마지막으로 카리아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도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푸른색의 거대한 번개가 건물을 향해 떨어졌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건물은 사라지고 번개의 커다란 흔적만이 남았다.
“기억할게, 카리아.”
사도의 마음속에 미묘한 감정이 일었다. 사도는 언젠가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지금과 같은 감정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오른쪽 귀에 걸고 있던 귀걸이를 주었던 사람에게서 가끔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었다. 카리아가 답을 가르쳐주었다.
‘카리아, 넌 왜 말하지 않았던 거지?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나에게 말했어야했어. 너나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말했어야했어.’
번개의 흔적을 뒤로하고 위로 오르던 사도는 뒤를 돌아보았다. 카리아가 울던 모습이 생각났다. 사도는 눈물이 싫었다. 그래서 슬플 때나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는 화를 냈다. 그리고 지금도 화가 났다.
‘카리아를 만나야겠어. 연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어. 영혼이라도 어딘가에 있겠지.’
“우우~!”
“늑대?”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사도는 이미 공중에서 땅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늑대들이 주변에서 모여들고 있었다. 땅에 내려선 사도는 주위로 모여드는 늑대들을 내쫓지 않고 보기만 했다. 늑대들은 사도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에게 늑대는 그다지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예전이라면 이미 검을 뽑아서 몇 마리 베었을 텐데, 카리아를 찾기 전에 일단 본래 성격부터 되찾아야겠군.”
사도는 양 허리에 매어진 두 자루의 검을 뽑았다. 선명한 붉은색이 익숙했다. 사도는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달려가 늑대를 베었다. 사도의 몸놀림은 늑대보다 훨씬 빨랐다. 처음 한 마리, 그리고 연이어 세 마리. 아마 베이기 직전에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피하지는 못했다. 동료들의 피가 공중으로 솟구치자 늑대들이 한꺼번에 사도에게 몰려들었다. 사도는 늑대들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움직여서 베었다. 나뭇잎 자르듯이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늑대의 시체가 생겨났다. 붉은 검이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늑대들의 시체가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사도에게는 익숙한 감각이었다. 위험한 상대라고 늑대들이 깨닫기도 전에 사도는 몰려든 늑대들을 모두 베어버렸다. 검에 피가 흘렀지만 피와 똑같은 검의 색 때문에 마치 검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허공에 짧게 검을 휘두르자 피가 떨어져나가며 검이 깨끗해졌다.
“실력은 녹슬지 않았군. 그럼 어디에서부터 찾아야할까, 가까이에는 없는 것 같은데.”
사도는 잠시 고민하다가 지금껏 가본 적이 없는 곳부터 가보기로 결정했다.
“이 세계에서 가본 적이 없는 나라라면 마르셀이군. 마르셀이라면 저기인가?”
사도는 마르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멀지만 사도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 안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서둘러야할 이유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느꼈던 높은 곳의 바람이 시원했기에 사도는 또다시 허공에 발을 디디며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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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질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