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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시안 . 1


- 눈을 뜬다.

새하얀 공간.

하늘은 아침 무렵인지, 분홍빛으로 물들어 저편에 해가 떠 있다.
따뜻한 바람. 지금은 겨울인데 봄처럼 따스한 산들바람이 분다.
여긴.. 어디지.

주변에는 땅이 보이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있다.
새하얀 부엉이 몇 마리만이, 내가 서 있는 판 둘레를 돌고 있다.
내 방 정도의 넓이밖에 되지 않는 판.
다른 대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나마, 이 판도 공중에 떠 있다.

플라스틱은 아니다.
하지만, 굉장히 부드러운 느낌이다. 지점토 같은 것과 비슷한 감촉.
신비한 느낌.

...일단은 여기서 가만히 있자. 함부로 움직이는 건 위험하다.
아까 같은 일도 있었다.....

"...."

슬프지는 않다.
화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기분이 내 안에 꽉 차서 견딜 수 없다.
답답하다. 이 기분은 뭐지.

... 혹시 여긴 천국인가?
내가 죽어서 이리 온 건가?

"난... 죽은 건가..."
"아닙니다. 당신은 살아 있어요. 아주 멀쩡히"

아까 들렸던 목소리가 계단 쪽에서 내 질문에 딱 잘라 대답한다.
단호히. 그리고 차갑게.

여자가 계단 아래에서 올라오고 있다.

분명 아까 보았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서 나타난 거야! 도대체 이 상황은 뭐냐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푸른 눈.
허리까지 오는 은색 머리를 두 갈래로 묶었다. 마치...

"누구..죠?"

인형 같다.
아름답다고 하면 아름다웠다.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나이는 기껏해야 16, 17세 정도... 내 나이는 15살이다.

"제 이름은 나오 마리오타 프라데이리. 제가 당신을 여기로 이동시켰습니다."

...이 여자가, 동진이를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 여자가.
분노의 감정은 느껴지지 않는다.
친구가 죽었는데도.

날 짓누르던 기분이 더욱 강해졌다.

"...왜, 내 친구를..."

말하는 것조차 힘들다. 힘을 쥐어짜내어 간신히 입을 떼었다.

"죽도록, 내버려 뒀죠?"

"그 상황에서 저에게는 한 사람을 구할 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린이 필요로 하는 당신을 구했습니다."
"...."

딱 잘라 대답했다.
저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필요한 것 이외엔 모두 버린다고 이면에서 말하는 소리.
그래. 이런 식으로 답을 해 줬다 이거지.

"...에린은 뭐지?"
"당신이 속한 세계의 평행 세계 중 하나의 이름입니다.
당신이 불려온 이유는 당신의 세계가 마족에게 습격당한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마족..."

이 여자는 인형이 확실하다.
생명은 가지고 있지만, 정보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보였다.
감정. 욕망. 의지.
지금 당장 여기서 죽게 되어도 아무런 불평을 하지 않겠지.

"당신의 세계는 현재 반 가량이 마족들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당신이 있던 학교의 모든 인간은 마족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당신이 기억하고 있던 시간으로부터는, 당신 세계의 시간으로 4일 정도가 지났습니다."
"...."

....돌연 세상이 습격당했다.
친구들 모두가 살해당했다.
내가 속해 있던 세계는 끝났다.

"...왜? 어째서? 우리 부모님은?"
"당신의 세계, 티르 나 노이와 에린. 그리고 마족이 사는 땅, 로웬 톤줴르 소긴은 평행 세계에 속해 있습니다.
마족은 땅을 넓히고자 두 세계를 침공했습니다. 당신의 부모님에 관해서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이제 질렸다.

"...네 주인은 어디 있어. 여긴 어디지? 난 인형이 아니라 인간과 말을 하고 싶다고.
당장 네 주인을 데려와...."
"저는 이 세계들를 관장하는 세 신 중, 모리안 여신님의 명령 하에 움직입니다.
하지만, 저도 인간이고, 자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정보는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전 저만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는 데에는 충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기는 소울 스트림입니다. 이 공간을 통해서 세 세계 간의 출입이 가능합니다."
"그럼 그 여신을 여기로 불러내. 담판을 짓자고.
왜 이런 기상천외한 일이, 몇십억의 인간 중에, 나로 선택받았는지, 모든 것이 알고 싶어."
"그렇게 초조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또 다른 목소리.

목소리만으로도 평범한 존재를 압도할 듯한, 하지만 가늘고 작은 목소리가 계단 쪽에서 들려온다.
옆을 돌아본다.

거대한 검은색 날개.
눈은 감고 있다. 작은 얼굴. 매끄러운 긴 흑발이 땅에 늘어지도록 길다.
순수한 흰빛의 옷. 발 끝에서 늘어질 법 하면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다.
걸고 있는 세 개의 목걸이는 은은하게 은빛으로 빛난다.
한눈에도 인간과는 격이 다른,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쌍하게도...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군요."

거만한 대사.
그러나 전혀 거만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동정하기보다는.... 말 자체에 아무런 감정이 없다.
...내가 느끼던 기분은 그리움이었나...

"더럽군. 피조물을 깔보면서 우월심에 차 있는 건가?"
"후훗, 역시 당신을 선택한 것은 옳았습니다. 김천재 씨."

감고 있던 눈이 살짝 뜨이며 미소를 짓는다...

날카로운 눈.
모든 것이 꿰뚫리는 끔찍한 느낌.

"으아악!"

안 그래도,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던 몸은
모든 것을 간파당하자 힘을 일시적으로 힘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곧 꿰뚫리는 느낌은 사라졌다.

나오와 모리안은 그저 쓰러진 나를 굽어볼 뿐이다.

"허억... 허억... 날 부른... 목적이 뭐지? 왜 나지?"

다시 질문을 하면서 일어선다.
왜지? 내가 특별해서?
내가 이 신에게 필요한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반대로 이 신을 협박할 수도...

"착각은 하지 마세요. 당신만이 에린에 불려온 밀레시안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부른 밀레시안은, 당신 하나입니다."

다시 웃는다..
의미를 종잡을 수 없다.

"질문한 것에 대답해줘. 왜, 나지?"
"그냥요."

...뭐?

"그냥요. 그냥. 에린을 구할 만한 사람을 찾다가 우연히 당신이 재미있어 보였거든요."

잊고 있던 분노의 감정이 다시 눈을 뜬다.
감정에 묶여 있던 쇠사슬을 잡아 뜯는다.
저 여자를 죽인다. 죽일 것이다.
최악의 신이다. 이런 자가 신이라고?
용서할 수 없어. 어째서. 저따위 신 때문에 동진이가 죽었다.
내 세계가 끝났다. 모든 것을 잃었다.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내 친구들이 죽은 거냐!!!"


온몸의 힘을 짜내어 혼신의 주먹을 날린다.

"으아아아아!!!"
"정말이지..."

-휙

모리안이 한 손을 치켜든다....

당장에 기분이 사그라든다.


-쿵


있는 힘껏 날린 주먹의 목적이 사라지면서, 그 힘은 곧바로 정면을 향했다.
그리고 내 몸은 있는 힘껏 중력에 순응하면서 바닥에 다이빙을 한다.

"으... 으헉..."

생각에 혼란이 온다. 왜지? 내가 왜 그랬지?
왜? 내가 고맙다고 빌어야 할 상황이 마땅한데.
도대체 왜?

"쓸데없는 감정은 판단을 멈추게 하죠.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이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저는 그 대가로, 당신에게 에린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할 것입니다."
"에린을...구해?"
"그렇습니다. 물론, 에린을 구하기 위한 수단을 당신에게 주겠어요."

수단?
무기나 정령 같은 건가?
아니면 내 몸 자체가 강해진다던가?

"뭘 줄 거지?"

살짝 웃음을 짓더니, 작은 얼굴을 근엄한 얼굴로 변하게 하며 외친다.

"나 모리안은, 눈 앞의 인간 김천재에게 '신의 계산서'의 소유권을 부여합니다."

-계속-





네 언제 쌀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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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레벨:0]Trouble 2008.10.27. 23:48
아아 - 마비노기 소설이군요 ㅎㅎ -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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