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시안 . 2
- 도실이
- 643
- 3
무언가에 의해 '짙어진' 목소리.
그 목소리는, 이 황량하고 따뜻한 공간 구석까지 진하게 울려 퍼지는 듯 하다.
...메아리가 들린다. 이 공간은 닫혀 있군.
"...신의 계산서?"
"네. 당신은 지금부터 '신의 계산서'를 지니고 편집할 권한을 얻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로 간단한 예를 들면..."
두 손을 앞으로 내어, 뭔가를 두 손으로 잡는 듯한 동작을 한다.
잠시 후, 손바닥에서 빛이 생성되고-
-쿠우웅
거대한 질량.
아무것도 없던 공간의 중심에서, 분자 하나하나의 질량이 37경배 증가되었다.
극도로 좁은 공간에서 천문학적으로 질량이 불어난 분자들은 점으로 밀집한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블랙... 홀?"
현대물리학에서 실제로 관찰된적이 한 번도 없는 블랙홀이 눈앞에 생성되었다.
인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인력이 차단되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X선의 방출을 느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신의 계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정보. 법칙.
당신은, 세상의 법칙을 자유롭게 가공, 편집할 수 있습니다.
당신 자체가 이 세상의 '진실'이 된 거죠."
내가 '진실'이 되었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건... 그야말로 '신'의 힘이다.
이 힘이라면... 세상은 물론이고, 이 신까지 굴복시켜서...
...예전. 동진이와 학교에 가던 때로...
생각에서만 머무르지 말자. 나는 지금, '힘'이 되었다.
이 신을 굴복시키고, 과거로 돌아가는 거다.
"후후후... 실수했군. 모리안. 좀 위험한 거 아냐? 내가 맘만 먹으면 모든 것을 끝장낼 수도 있다고.
그게 설령, 신이라고 해도 말이지. 자, 얌전히 내 명령에 따라 주실까. 소멸되기 싫으면 말이지."
최대한 협박하는 투로 말을 던졌다.
그런데.
"후... 후훗. 우후후후. 아하하하하하."
기분 나쁜 웃음이다. 웃는다는 건...
내게 승산은 없다는 거겠지.
"내가 틀린 말을 했나? 나는 지금, 이 세상의 '진실'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어?"
"후훗, 우... 네. 당연히 틀린 말을 했죠. 제가 당신에게 준 것은 '소유권'이지,
이 세계를 지배할 권한을 준 건 아닙니다. 당연히 당신이 하는 행동엔 제한이 생기죠.
그리고 그것은 말 그대로 '신의 계산서'. 제가 만든 세상 만물의 법칙을 효력으로써 기록해 놓은 책.
저에겐 당연히 영향이 미치지 않죠."
그렇게 말하더니, 블랙홀을 쥐고 있던 손 중 하나를 뗀다.
막대한 질량이 무로 변하고, 중력의 차단도 멈춘다.
"이게 블랙홀이란 걸 알아차린 것도 계산서의 힘...
당신은, 방금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온 몸으로 느꼈어요.
질량의 증가, 밀집, 중력의 차단, X선...
자, 그럼 슬슬 에린을 구하러 가 주셔야겠어요.
에린을 구한다면, 당신을 티르 나 노이로 되돌려보내 드리죠.
상으로 계산서의 권한은 그대-로."
....어찌되었건, 반항은 불가능하단 소리군.
그대로 명령에 따르는 수 밖엔 없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그렇다면, 왜 네가 직접 에린을 구하지 않는 거지?
이런 힘을 갖고 있으면서."
"이 싸움은 순전히 신들의 놀이입니다."
놀이...
"당신은, 제 장기말 중에 특별히 강한 말 한 개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 초월적 존재인 너에겐 천한 피조물들이 다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지.
가식적인 애정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어."
신에게 있어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면, 나도 그대로 즐겨 주겠다.
모든 것을 가지고 놀아 주지... 여신, 너조차도.
"구하지, 에린을. 너의 힘도 빌렸겠다, 위대한 영웅 행세를 해 주겠어."
"역시, 당신을 선택한 건 옳은 선택이었네요. 후훗"
"에린으로는 어떻게 가면 되지?"
"에린으로는 제가 안내해 드리겠어요."
줄곧 조용히 있던 나오가 말을 한다.
"그래. 인형이라고 해서 미안했어."
"괜찮습니다. 그리고, 에린에는 일반적인 밀레시안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알았어. 빨리 가자고."
"알겠습니다. 이 소울 스트림을 넘겠습니다.
정신에 충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
아까 느꼈던 꿰뚫리는 듯한 느낌.
저 신이 다시 눈을 뜬 건가? 아니면 이동에 따르는 정신적 충격?
여신을 돌아다보았다.
가늘게 떠진 날카로운 눈.
빨갛게 흐려져가는 시선 속에서, 그 눈은 빛을 반사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만. 우월감. 장난감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눈이 내 영혼을 끊임없이 꿰뚫는다..
"■있게될■■■에- ■■■"
뭐라고 말하고 있다. 귀에는 소리가 끊어져서 들어온다...
하지만 저 입모양으로 봐선...
재미있게 될 것 같네- ■■■
뒷부분에 말한 몇 글자는 알 수가 없다. 나에겐 계산서가 있으니 알 수-
아, 그런가. 신과 관련된 건가...
붉은색이 덧칠해져가던 시선이 완전히 새까맣게 덮인다.
"합!"
"크허억..!"
고자킥?!
그것도 정통으로 정중앙. 계산된 움직임이다.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도... 도대체 왜... 어흑... 설마.. 이게 정신적 충격...이라고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한 번쯤 온 힘을 다해서 날려보고 싶었어요."
"으..으헉...어억..."
-풀썩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 보니 나는 숲 속에 있다... 아니, 뒤쪽은 뻥 뚫려서 마을까지 보인다.
아무래도 기절해서 쓰러졌던 모양이다. 난 아직 고자가 아닌 거지?
제발, 난 고자가 아닐 거야. 그래. 킥 한방으로 고자가 될 리가 없어...
...그것보다 왜 고자킥을 날린 거지...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살펴본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이 높게 떠 있다. 아직 낮인 것 같다.
따뜻한 산들바람이 불고, 새가 지저귄다.
저 앞에 보이는 울타리 근처에... 너구리와 닭, 병아리가 있다.
푸르게 빛나는 나뭇잎과 풀. 초여름 정도 같다.
마을은 시골 마을이란 느낌이 팍팍 들지만...
역시 다른 세계라 그런지 다른 느낌이다.
"평화롭다..."
가장 처음 느낀 것은 '평화' 였다.
이 세계를 구해 달라고 부탁받았지만...
일단 이 근방은 평화로운 것 같다.
나는 인공적인 구조물 위에 쓰러져 있었다.
네 개의 기둥, 그것들과 쇠사슬로 연결된 옥색 돌.
지금 보니 반짝인다... 보석이었던 것 같다.
"자 이쪽이야~ 여기 여기. 여기 봐."
나...를 부르는 건가?
남자 아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다봤다.
커다란 투구.
정밀하게 묘사가 된 용이 장식된 고급스러운 투구를 쓰고 있다.
키의 1/3은 될 법한 투구.
키 150에서 160... 실제로는 더 작겠지.
"...넌 누구지?"
꼬마 앞으로 다가가며 묻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걸 물어 볼 때는 자기부터 소개하는 게 예의란 거 몰라?"
"너도 모리안의 수하냐?"
"여신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마... 라기보단, 어떻게 너 모리안 여신님에 관한 걸 알고 있는 거야?"
얼굴을 맞댈 정도로 가까이 왔다.
어린애 주제에 반말...여긴 존경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가?
...그것보다, 묘하게 위화감이 들지만 훈민졍음을 태연히 쓰고 있다는게 놀랍다.
"그럼, 나오는 아냐?"
"아까부터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나오는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여신님의 수하는 아냐.
난 그저 소울 스트림을 넘어온 밀레시안들을 마을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어."
"음..."
밀레시안을 이렇게 맞이까지 하고 있다...
무슨 목적이지? 아니면 단순히 수가 많은 건가?
"난 김천재야. 네 이름은?"
"틴이야. 그것보다 너, 주머니 좀 뒤져봐. 나오가 촌장에게 쓴 소개장이 있을 거다."
교복 바지주머니를 뒤진다...
책 한 권, 편지 한 장이 나온다.
"촌장이라면... 저 마을의?"
"그래. 좀 이따 가르쳐 주는 길로 나가서 전해 주면 돼.
그 책은 에린 가이드북이니까 한번 쭉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거고...
줄 게 있다. 받아."
사람 팔만한 길이의 굵은 검이다. 장식 같은 게 전혀 없는 걸로 보아 대량생산품이다...
"...갑자기 웬 살인무기를 주는 거야..."
"네가 살던 곳이랑 다르게, 여긴 도처에 마족의 지배를 받는 동물들이 많아.
이런 거 하나 정도만 가지고 다녀도 제 몸 처신은 할 수 있을걸?"
이 근방도 그다지 평화롭지는 않은 모양이군.
일단 검을 받아 오른손에 든다. 꽤 무겁군...
"그리고 그 검은 좀 특별한 물건이지. 아이리!"
틴이 외치자, 검이 일순간 빛나더니 여자아이가 튀어나온다.
"안녕하세요."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
검은 머리를 뒤로 묶었다. 맑고 투명한 푸른 눈.
오른손에 책을 한 권 들고... 이상한 옷에 치마.
날개... 라기보단 등에 나뭇가지 같은 게 달려 있고, 거기에 형형색색의 판이 달려 있다.
"정...령?"
"너 어떻게 알았어. 보통은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놀라는데..."
"이름은 아이리. 초보자를 돕는 정령....이네."
계약서의 효과인지, 이 정령에 관한 모든 것이 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이 분이.. 이제 제 주인님이 되실 분인가요?"
아이리는 약간 겁을 먹은 듯이, 틴의 옷깃을 잡는다.
"그래... 이 사람은 김천재. 앞으로 얼마간 너와 함께 하실 분이다. 인사드려."
"아.. 저.. 전 아이리라고 해요. 잘 부..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를 숙인다.
완전히 굳어 있군.
"너무 긴장하지 마. 좀 같이 있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네에..."
틴이 아이리를 다독여 준다.
"자, 그럼 가 봐. 이 녀석은 밀레시안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사항은 다 알고 있어.
마을로 가는 길은 저- 앞에서 왼쪽. 오른쪽은 아직 너한테는 위험하니까 안 돼.
그리고 그 녀석, 겁 많으니까 잘 대해 줘."
"알았어. 자, 가자 아이리."
"아, 예!"
각오를 단단히 한 듯이 보인다... 만 뻣뻣한 건 여전하네.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울타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산 아래까지 좁게 나 있는 오솔길을 내려간다.
-계속-
언제 쌀지 모릅니다.
그 목소리는, 이 황량하고 따뜻한 공간 구석까지 진하게 울려 퍼지는 듯 하다.
...메아리가 들린다. 이 공간은 닫혀 있군.
"...신의 계산서?"
"네. 당신은 지금부터 '신의 계산서'를 지니고 편집할 권한을 얻게 됩니다.
할 수 있는 일로 간단한 예를 들면..."
두 손을 앞으로 내어, 뭔가를 두 손으로 잡는 듯한 동작을 한다.
잠시 후, 손바닥에서 빛이 생성되고-
-쿠우웅
거대한 질량.
아무것도 없던 공간의 중심에서, 분자 하나하나의 질량이 37경배 증가되었다.
극도로 좁은 공간에서 천문학적으로 질량이 불어난 분자들은 점으로 밀집한다.
그리고... 그곳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블랙... 홀?"
현대물리학에서 실제로 관찰된적이 한 번도 없는 블랙홀이 눈앞에 생성되었다.
인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인력이 차단되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X선의 방출을 느낄 수 있다...
"그렇습니다. '신의 계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정보. 법칙.
당신은, 세상의 법칙을 자유롭게 가공, 편집할 수 있습니다.
당신 자체가 이 세상의 '진실'이 된 거죠."
내가 '진실'이 되었다.
내가 모든 것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이건... 그야말로 '신'의 힘이다.
이 힘이라면... 세상은 물론이고, 이 신까지 굴복시켜서...
...예전. 동진이와 학교에 가던 때로...
생각에서만 머무르지 말자. 나는 지금, '힘'이 되었다.
이 신을 굴복시키고, 과거로 돌아가는 거다.
"후후후... 실수했군. 모리안. 좀 위험한 거 아냐? 내가 맘만 먹으면 모든 것을 끝장낼 수도 있다고.
그게 설령, 신이라고 해도 말이지. 자, 얌전히 내 명령에 따라 주실까. 소멸되기 싫으면 말이지."
최대한 협박하는 투로 말을 던졌다.
그런데.
"후... 후훗. 우후후후. 아하하하하하."
기분 나쁜 웃음이다. 웃는다는 건...
내게 승산은 없다는 거겠지.
"내가 틀린 말을 했나? 나는 지금, 이 세상의 '진실'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어?"
"후훗, 우... 네. 당연히 틀린 말을 했죠. 제가 당신에게 준 것은 '소유권'이지,
이 세계를 지배할 권한을 준 건 아닙니다. 당연히 당신이 하는 행동엔 제한이 생기죠.
그리고 그것은 말 그대로 '신의 계산서'. 제가 만든 세상 만물의 법칙을 효력으로써 기록해 놓은 책.
저에겐 당연히 영향이 미치지 않죠."
그렇게 말하더니, 블랙홀을 쥐고 있던 손 중 하나를 뗀다.
막대한 질량이 무로 변하고, 중력의 차단도 멈춘다.
"이게 블랙홀이란 걸 알아차린 것도 계산서의 힘...
당신은, 방금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온 몸으로 느꼈어요.
질량의 증가, 밀집, 중력의 차단, X선...
자, 그럼 슬슬 에린을 구하러 가 주셔야겠어요.
에린을 구한다면, 당신을 티르 나 노이로 되돌려보내 드리죠.
상으로 계산서의 권한은 그대-로."
....어찌되었건, 반항은 불가능하단 소리군.
그대로 명령에 따르는 수 밖엔 없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그렇다면, 왜 네가 직접 에린을 구하지 않는 거지?
이런 힘을 갖고 있으면서."
"이 싸움은 순전히 신들의 놀이입니다."
놀이...
"당신은, 제 장기말 중에 특별히 강한 말 한 개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 초월적 존재인 너에겐 천한 피조물들이 다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지.
가식적인 애정보다는 훨씬 마음에 들어."
신에게 있어 놀이에 지나지 않는다면, 나도 그대로 즐겨 주겠다.
모든 것을 가지고 놀아 주지... 여신, 너조차도.
"구하지, 에린을. 너의 힘도 빌렸겠다, 위대한 영웅 행세를 해 주겠어."
"역시, 당신을 선택한 건 옳은 선택이었네요. 후훗"
"에린으로는 어떻게 가면 되지?"
"에린으로는 제가 안내해 드리겠어요."
줄곧 조용히 있던 나오가 말을 한다.
"그래. 인형이라고 해서 미안했어."
"괜찮습니다. 그리고, 에린에는 일반적인 밀레시안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알았어. 빨리 가자고."
"알겠습니다. 이 소울 스트림을 넘겠습니다.
정신에 충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
아까 느꼈던 꿰뚫리는 듯한 느낌.
저 신이 다시 눈을 뜬 건가? 아니면 이동에 따르는 정신적 충격?
여신을 돌아다보았다.
가늘게 떠진 날카로운 눈.
빨갛게 흐려져가는 시선 속에서, 그 눈은 빛을 반사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만. 우월감. 장난감을 바라보는 것만 같은 눈이 내 영혼을 끊임없이 꿰뚫는다..
"■있게될■■■에- ■■■"
뭐라고 말하고 있다. 귀에는 소리가 끊어져서 들어온다...
하지만 저 입모양으로 봐선...
재미있게 될 것 같네- ■■■
뒷부분에 말한 몇 글자는 알 수가 없다. 나에겐 계산서가 있으니 알 수-
아, 그런가. 신과 관련된 건가...
붉은색이 덧칠해져가던 시선이 완전히 새까맣게 덮인다.
"합!"
"크허억..!"
고자킥?!
그것도 정통으로 정중앙. 계산된 움직임이다.
혼신의 힘을 다한 것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도... 도대체 왜... 어흑... 설마.. 이게 정신적 충격...이라고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냥, 한 번쯤 온 힘을 다해서 날려보고 싶었어요."
"으..으헉...어억..."
-풀썩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떠 보니 나는 숲 속에 있다... 아니, 뒤쪽은 뻥 뚫려서 마을까지 보인다.
아무래도 기절해서 쓰러졌던 모양이다. 난 아직 고자가 아닌 거지?
제발, 난 고자가 아닐 거야. 그래. 킥 한방으로 고자가 될 리가 없어...
...그것보다 왜 고자킥을 날린 거지...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위를 살펴본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태양이 높게 떠 있다. 아직 낮인 것 같다.
따뜻한 산들바람이 불고, 새가 지저귄다.
저 앞에 보이는 울타리 근처에... 너구리와 닭, 병아리가 있다.
푸르게 빛나는 나뭇잎과 풀. 초여름 정도 같다.
마을은 시골 마을이란 느낌이 팍팍 들지만...
역시 다른 세계라 그런지 다른 느낌이다.
"평화롭다..."
가장 처음 느낀 것은 '평화' 였다.
이 세계를 구해 달라고 부탁받았지만...
일단 이 근방은 평화로운 것 같다.
나는 인공적인 구조물 위에 쓰러져 있었다.
네 개의 기둥, 그것들과 쇠사슬로 연결된 옥색 돌.
지금 보니 반짝인다... 보석이었던 것 같다.
"자 이쪽이야~ 여기 여기. 여기 봐."
나...를 부르는 건가?
남자 아이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다봤다.
커다란 투구.
정밀하게 묘사가 된 용이 장식된 고급스러운 투구를 쓰고 있다.
키의 1/3은 될 법한 투구.
키 150에서 160... 실제로는 더 작겠지.
"...넌 누구지?"
꼬마 앞으로 다가가며 묻는다.
"다른 사람에 대한 걸 물어 볼 때는 자기부터 소개하는 게 예의란 거 몰라?"
"너도 모리안의 수하냐?"
"여신의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마... 라기보단, 어떻게 너 모리안 여신님에 관한 걸 알고 있는 거야?"
얼굴을 맞댈 정도로 가까이 왔다.
어린애 주제에 반말...여긴 존경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인가?
...그것보다, 묘하게 위화감이 들지만 훈민졍음을 태연히 쓰고 있다는게 놀랍다.
"그럼, 나오는 아냐?"
"아까부터 질문에 대답은 안 하고... 나오는 나도 알아. 하지만, 난 여신님의 수하는 아냐.
난 그저 소울 스트림을 넘어온 밀레시안들을 마을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어."
"음..."
밀레시안을 이렇게 맞이까지 하고 있다...
무슨 목적이지? 아니면 단순히 수가 많은 건가?
"난 김천재야. 네 이름은?"
"틴이야. 그것보다 너, 주머니 좀 뒤져봐. 나오가 촌장에게 쓴 소개장이 있을 거다."
교복 바지주머니를 뒤진다...
책 한 권, 편지 한 장이 나온다.
"촌장이라면... 저 마을의?"
"그래. 좀 이따 가르쳐 주는 길로 나가서 전해 주면 돼.
그 책은 에린 가이드북이니까 한번 쭉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거고...
줄 게 있다. 받아."
사람 팔만한 길이의 굵은 검이다. 장식 같은 게 전혀 없는 걸로 보아 대량생산품이다...
"...갑자기 웬 살인무기를 주는 거야..."
"네가 살던 곳이랑 다르게, 여긴 도처에 마족의 지배를 받는 동물들이 많아.
이런 거 하나 정도만 가지고 다녀도 제 몸 처신은 할 수 있을걸?"
이 근방도 그다지 평화롭지는 않은 모양이군.
일단 검을 받아 오른손에 든다. 꽤 무겁군...
"그리고 그 검은 좀 특별한 물건이지. 아이리!"
틴이 외치자, 검이 일순간 빛나더니 여자아이가 튀어나온다.
"안녕하세요."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
검은 머리를 뒤로 묶었다. 맑고 투명한 푸른 눈.
오른손에 책을 한 권 들고... 이상한 옷에 치마.
날개... 라기보단 등에 나뭇가지 같은 게 달려 있고, 거기에 형형색색의 판이 달려 있다.
"정...령?"
"너 어떻게 알았어. 보통은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놀라는데..."
"이름은 아이리. 초보자를 돕는 정령....이네."
계약서의 효과인지, 이 정령에 관한 모든 것이 내 머리 속으로 흘러들어 온다.
"이 분이.. 이제 제 주인님이 되실 분인가요?"
아이리는 약간 겁을 먹은 듯이, 틴의 옷깃을 잡는다.
"그래... 이 사람은 김천재. 앞으로 얼마간 너와 함께 하실 분이다. 인사드려."
"아.. 저.. 전 아이리라고 해요. 잘 부.. 부탁드려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를 숙인다.
완전히 굳어 있군.
"너무 긴장하지 마. 좀 같이 있다 보면 익숙해질 거야."
"네에..."
틴이 아이리를 다독여 준다.
"자, 그럼 가 봐. 이 녀석은 밀레시안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사항은 다 알고 있어.
마을로 가는 길은 저- 앞에서 왼쪽. 오른쪽은 아직 너한테는 위험하니까 안 돼.
그리고 그 녀석, 겁 많으니까 잘 대해 줘."
"알았어. 자, 가자 아이리."
"아, 예!"
각오를 단단히 한 듯이 보인다... 만 뻣뻣한 건 여전하네.
잘 해 나갈 수 있을까...
울타리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산 아래까지 좁게 나 있는 오솔길을 내려간다.
-계속-
언제 쌀지 모릅니다.